심보선 <눈 앞에 없는 사람>

올해 꼽는 단 한편의 시집이라면 심보선 시인의 <눈 앞에 없는 사람>.
전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도 좋았기에 큰 기대를 했고 역시 좋았다.

'이별'을 '이 별'로 바꿔 쓴 아래 '이 별의 일'이 가장 좋았고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텅 빈 우정' '새' 'Mundi에게' 등도 좋았다.
그런데 정작 가장 좋았던 것은 뒤표지에 실려있는 저자의 산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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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세찬 빗줄기를 뚫고 건너온, 물방울 속에 뭉쳐 있는 당신의 전언을 펼쳐 읽습니다.
안타깝게도 법과 규칙의 말들은 죄의 무릎과 무릎 사이에 놓인 순수함을 보지 못하는군요.
세계의 단단한 철판 위에 이성의 흔적을 새기는 사람들. 물의 말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죄악의 틈새에서 잠들고 자라나는 어린 영혼을 보고는,
아이, 불결해, 눈살을 찌푸리기만 하네요.
하지만 물방울로 이루어진 당신의 말은 그 영혼을 투명하게 비춰주는군요.
물방울로 오로지 물방울로 싸우는 당신. 물방울의 정의를 행사하는 당신.
판결과 집행이 아니라 고투와 행복을 증언하는 당신.
당신은 말하죠. 인간은 세상의 모든 단어를 발명했어요. 사랑을 제외하고요.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서 빌려온 유일한 단어예요.
그러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죠.
나는 말하죠. 오늘 밤,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아 낯설군요.
당신은 말하죠. 아니, 당신은 너무 낯설어 나를 닮았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by 주성치 | 2011/12/31 15:02 | 잡담

라마섬 소쿠완의 레인보우 레스토랑

라마섬에 3번 정도 가봤으면서도 늘 용수완 근처에 있느라
처음으로 그 반대편 소쿠완에 가 본 날.
소쿠완에는 그 유명한 해산물 레스토랑 '레인보우'가 있다.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에 꼭 넣고 싶었지만
당시 용수완에서 넘어가는 걸 포기하는 바람에 넣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는 곳. 

센트럴에서 배 타고 용수완으로 가서 1시간 정도 좋은 경치 감상하며
소쿠완으로 산 타고 걸어가서 레인보우 레스토랑에 도착해 밥 먹고 
레인보우가 제공하는 무료 페리를 이용해 센트럴이나 침사추이로 돌아오는 코스가 정석이다.
 
어느 순간부터 홍콩에 가면 구룡 반도는 안 가고 늘 홍콩섬에만 있게 되고
유독 해산물 레스토랑에 꽂히게 된다.
책에도 소개한 사이쿵이나 레이유문은 언제 가도 좋다. 
암튼 다시 홍콩에서 모 기관과 이런저런 이유로 작업하고 있는 게 있어 
다시금 홍콩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이어지는 내용

by 주성치 | 2011/05/08 16:58 | 홍콩 | 트랙백 | 덧글(19)

천양희 시인

오랜만에 내리는 비 때문인가,
마음이 참 심난하다.

너무 술이 마시고 싶은데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를 하느라
앞으로 열흘 정도는 더 술을 입에도 대면 안 된다.-_-
내일 부산에서 친구를 만나 모처럼의 회포를 풀어야 하는데
이거 은근히 괴롭다.

암튼
비, 하면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다.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연인을 묘사한,

이수명 시인의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 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 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손들이 있고
나는 문득 나의 손이 둘로 나뉘는 순간을 기억한다

내려오는 투명 가위의 순간을

깨어나는 발자국들
발자국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발자국에 맞서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 있고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육체가 우리에게서 떠나간다
육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가 돌아다니는 단추들
단추의 숱한 구멍들

속으로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 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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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너무 힘든 때가 있었다.
죽고싶도록 외롭고 괴로웠다.
방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언제나 방을 훤히 비춰두고
베란다는 물론 창이란 창은 다 열어놓고
투과율도 별 좋지 않은 커튼이란 커튼도 다 없애버렸다.

그때 오랜 친구가 보내준 시집을 꺼내 들었고
너무 큰 위안을 얻었다.
한 단어 한 구절 알알이 내 가슴 속에 박혔다. 
아 어쨌건 잘 살아야 겠다,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그 친구는 왁자지껄한 교실에서
너무나 조숙하게 틈만 나면 시집을 읽던 친구였다.
난 '시'라는 것이 교과서 외의 책에 실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들이 이 조그만 책을 왜 사지? 했던 때니까.

암튼 그는 천양희 시인이 자기 엄마와 동창이라고 했다.
실제 천양희 시인은 7남매 중 막내로 고향이 부산이고
심지어 내가 살던 곳과 가까운 경남여고 출신의 아줌마였다.

그런 천양희 시인님께서 세월이 흘러 나에게,
집 어느 구석에서든 울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 고 했다. 

<웃는 울음>이라는 시는 그때도 좋았지만
올해 초 나온 천양희 시인의 시집에도 같은 제목의 시가 실려 있다.
보통 뒤에 나온 동명의 시가 더 못 할 텐데 이건 정반대다. 
올해 시집에 실려 있는 <웃는 울음>이 나에게 더 깊이 다가왔다.
그때 이 시를 읽었다면 아마 더 펑펑 울었을 것 같다.

천양희 시인의 좋아하는 시 두 편을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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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울음>

집 어느 구석에서든
울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
가끔씩 어느 방구석에서든 울고 싶은데도
울 곳이 없어
물 틀어놓고 물처럼 울던 때
물을 헤치고 물결처럼 흘러간 울음소리
물소리만 내도 흐느낄 울음은 유일한 나의 방패
아직도 누가 평행선에 서 있다면
서로 실컷 울지 못한 탓이나

집 어느 구석에서든
울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
가끔씩 어느 방구석에든 울고 싶을 때는
소리없이 우는 것 말고
몸에 들어왔다 나가지 않는 울음 말고
웃는 듯 우는 울음 말고

저녁 어스름 같은 긴 울음
폭포처럼 쏟아지는 울음
울음 속으로 도망가고 싶은 울음
집 구석 어디에서든
울 곳이 있어야 한다


........................................................................


<지나간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by 주성치 | 2011/04/29 16:57 | 잡담 | 트랙백 | 덧글(8)

<너스 베티>의 코이 물고기

닐 라뷰티의 <너스 베티>(2003)의 한 장면이다.
영화를 봤어도 어떤 장면인지 가물가물할 테지만 난 특별히 저 장면을 기억한다.
하긴 저 두 배우가 누군지 이름도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100%의 만남이란 없을텐데
저 장면은 내가 꿈꾸던 그 100%의 만남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그건 내가 관상어나 열대어에 유독 관심이 많아서이기도 한데,
그런 나에게 정말 멋진 첫 만남이 등장하는 영화다.

후반부 총격전 도중 방의 수족관이 깨지자,
여자는 "어떡해! 물고기가 나왔어!"라고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자 처음 보는 남자가 "일본산 코이 물고기네요. 제가 구해드릴게요."
여자는 '아니, 코이 물고기를 아세요?'라는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며 급호감.
이때 건너편에 있던 남자가 "이 와중에 왠 물고기 타령이야"라고 짜증을 내자,
남자는 "모르면 가만 있어!"라며 저 귀한 물고기를 구하러 뛰어든다.
저 장면을 보며 왜 그리 가슴이 뛰었는지.

일본산 코이 잉어는 얼핏 보면 비단잉어처럼 생겼는데 성질이 좀 다르다.
언젠가 집에 연못 같은게 생긴다면 가장 키우고 싶었던 물고기다.
어디서 기르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천차만별이다.
태어나서 작은 수족관에서 기르면 기껏해야 10센티 정도 자라지만
큰 연못이나 강에서 자라면 1미터가 넘는다.
자기가 속한 그 공간에 맞춰서 딱 그만큼만 자란다.
이미 커져버린 코이 물고기를 작은 공간에 두면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 

닐 라뷰티의 영화 인터뷰를 읽어본 적 없어서 단정할 수 없지만
어쨌건 그리 흔한 물고기는 아니라 굉장히 영화 속에서 튀지만 의도적인 장면으로 봤고
그래서 영화 속 르네 젤위거와 무관하게 감독의 사랑에 대한 단상으로 읽었다. 
전혀 모르던 남녀가 물고기에 대한 취향 하나로 급속도로 가까워지지만
결국 그 사랑은 코이 물고기처럼 그 사람의 그릇만큼만 자란다고나 할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그들은
결국 코이 물고기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걸거다.
상대의 사랑이 작거나 크건 간에 내가 그걸 담고 수용할 수 있는
그릇 자체의 용량이 작으면 결코 그 사랑이 커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건데 
마찬가지로 내 그릇이 아주 크다 해도 거기 맞게
상대가 그 속에서 자라주지 못하면 그 또한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결론은 누구든 참 맞춰주기 힘들다는 것.
그건 나이가 들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적극적으로 맞춰주려는 노력을 해야,
혹은 그렇게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뭐든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어쨌건 그럴 마음이 있다면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무엇이 얼마나 담기건 최대한 나의 그릇을 키우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친구건 연인이건.

 

by 주성치 | 2011/03/23 03:57 | 영화 | 트랙백 | 덧글(12)

이소룡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홍콩여행

이소룡의 <정무문>에서 잊을 수 없는 굴욕신입니다.

공원에 들어가려던 이소룡은 경비원에게 제지를 당합니다.

경비원은 개콘의 김준호처럼 이소룡에게 말합니다.

 

"넌 못 들어가니까, 돌아가"

 

사실 경비원은 그냥 얼굴에 검은칠만 한 중국 배우죠.-_-;

바로 아래와 같은 표지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와 중국인은 출입 금지. 두둥!

 

그러자 한 백인 여자가 개를 데리고 공원으로 들어갑니다.

참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열받은 이소룡이

"저건 뭡니까!"라고 따지니 경비원이 또 말합니다.

 

"외국개잖아."

 

급기야 일본놈들이 주변에 몰려들면서 이소룡의 분노작렬 액션신이 펼쳐집니다.


<정무문>은 사실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실제로 상하이 홍구공원(윤봉길 의사로 인해 유명한!)에는 그런 표지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홍콩영화들은 중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었기에

마카오에 있는 '까몽이스 공원'에서 이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이소룡과 홍콩영화촬영지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꼭 들어가보시구요.
홍콩관광청 블로그(정대리의 홍콩이야기)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에도 더 많은 얘기가...

by 주성치 | 2011/01/07 11:41 |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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